학부 수업 때 문형철 교수님께서 '치료가 뭡니까?'란 질문을 모든(!) 학생들에게 던진 적이 있었다.
"치료가 뭡니까?"
아프지 않게 해주는 것.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
동행.
항상성의 회복.
자존감의 회복.
타협.
등등 여러 대답이 나왔다.
따로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상황에 따라서 무게 중심이 달라질테니까.
나는 요즘 치료란 '동의(同意)'라는 것에 무게가 실린다.
다시 말해서 ①환자가 자각하는 증상의 심각성 ②환자의 치료 의지 ③의사의 치료 의지 ④의사의 지식과 경험
이 네 가지가 맞아 떨어질 때 기분좋은 치료가 이루어지는 것 같다.
매일 서너번씩 설사를 하거나, 생리 때마다 하루에 진통제를 네알씩 먹으면서도 그것을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①). 그런 환자를 설득해서 치료해봐야 좋은 소리 듣기 힘들다.
질병의 심각성을 느끼면서도 어떤 이유로든 치료 의지가 약한 사람들이 있다. 경제적인 이유든 끈기의 부족이든 신뢰의 부족이든(②). 그런 환자 역시 끌고 가봐야 서로 피곤하다.
환자는 치료를 원하고 의사가 그것에 대처해줄 수 있는 실력도 있다. 하지만 의사의 의지가 약한 경우가 있다(③). 예를 들어 그것이 감기라고 할지라도, 모든 급성 질환에 대처하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다. 또한 오래 지속된 업무로 지치거나 매너리즘에 빠지는 의사들도 많다. 왠지 치료하고 싶은 않은 사람도 있다. 의사도 사람이다.
모든 조건이 갖추어지고 환자와 의사의 치료 의지도 넘치지만, 의사의 밑천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④).
‘줄탁동기(啐啄同機)’라는 말이 있다. 치료 역시 마찬가지다.
진찰을 해보면 분명히 좋아질 수 있는 병이고, 고칠 자신이 있다고 해서 주제 넘게 끼어들면 안 된다.
기다릴 필요가 있다.
환자는 치료를 원하지만, 내 실력이 부족할 때가 있다.
미리 준비해야 한다.
환자가 알을 깨고 나오려고 할 때, 바로 그 때 준비된 의사의 손길이 필요하다.
이것도 인연(因緣)이다.
'한의학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병을 치료할 수 없는 경우> (0) | 2013.10.16 |
---|---|
고방처방의 분량에 대해서 (0) | 2013.10.15 |
상한론(傷寒論)과 상대적 서맥(relative bradycardia) (0) | 2013.06.03 |
표증(表證)과 발한(發汗) (0) | 2013.06.03 |
상한론의 도입부에 소개된 온병(溫病)이란? (0) | 2013.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