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人型; 사람의 유형)은 별 거 아니다.
특정 처방이 적응하는 사람의 유형이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시호계지탕 증례가 수십, 수백개 있는 사람은 시호계지탕으로 득효하는 사람의 대략적인 유형을 알고 있다. 대체로 마른 체형에 그 환자가 풍기는 특유의 긴장감, 말투, 눈빛 등이 있다. 시호계지탕은 신체증상의 상당수가 상변(常變)간에 있는 애매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특유의 ‘사람의 유형’이 시호계지탕의 선방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때가 많다. 소화 상태도 애매하고, 대변이 무르고 개운치 않을 수 있고, 수면상태도 그렇게 좋지 않고, 상열감이나 신체통도 무시할 수 없는 정도로 있고... 그런 식으로 신체증상이 애매하기 때문에 신체 증상만으로는 당귀사역가오수유생강탕이나 황련탕과 감별이 어려울 때가 있다. 왜냐하면 당사오나 황련탕도 전형적이지 않은 애매한 불편감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럴 때는 신체증상보다도 시호계지탕의 人型, 당사오의 人型, 황련탕의 人型이 처방의 감별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숙달되면 환자가 작성한 문진표를 살펴보고, 진료실에 걸어 들어오는 환자의 태도나 분위기, 처음 나누는 몇 마디의 인사말만으로도 시호계지탕을 잡아낼 수 있고, 정말 챠팅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지만 시호계지탕의 人型만으로 그 처방을 선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시호계지탕뿐만이 아니라 상당수의 처방은 이렇게 그 처방이 적응하는 사람의 유형이 있다. 물론 모든 처방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작약감초탕을 근골격계 질환에 사용할 때는 작약 특유의 근육의 과긴장상을 보고 치료하지, 마르든 뚱뚱하든, 추위를 타든 더위를 타든, 양적 성향의 사람이든 음적 성향의 사람이든 상관없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처방을 공부할 때, 그 처방의 증례를 많이 낸 사람의 경험을 빌어서 그 처방이 적응하는 인형(人型; 사람의 유형)을 같이 공부하는 것이 효율적인 방법이다. 책에 적힌 신체증상만으로 처방을 이해하는 것보다 사람의 유형을 같이 고려하면 실제 임상에서 적용하기 훨씬 쉬워진다.
책으로는 알 것 같은데, 실제로 환자를 보면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그 간극에 ‘사람의 유형’이 있다.
먼저 틀(型; template)을 익히고 나중에 그 틀을 깨는 것이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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