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 치료하다보면 특히 시호제(柴胡劑)는 변화가 무궁무진해서 이건 정형화할 수가 없다.
기본기를 익히고 나머지는 알아서 변통해서 사용해야 할 부분.
만약 환자의 인형(人型; 사람의 유형)을 무시한다면!
사실상 환자가 호소하는 어떤 복잡다단한 증상이든 고방의 시호제 혹은 후주가감의 조합으로 "만들어" 낼 수가 있다!!
이 말은 시호제의 치료 범위가 그만큼 넓다는 것을 방증한다.
예를 들어...
수면이 불량하다면 시호+작약 or 시호+복령 or 시호+모려
땀이 많다면 시호+모려 or 시호+계지
갈증이 심하다면 시호+과루근
설사를 한다면 시호+작약 or 시호+건강 or 시호+모려
변비가 심하다면 시호+작약
빈뇨가 있다면 시호+작약 or 시호+복령 or 시호+모려
부종이 있다면 시호+복령
흉부 증상(두근거림, 답답함, 불안감, 우울증)이 심하다면 시호+복령 or 시호+모려 or 시호+과루실
경련이나 저림 증상을 호소한다면 시호+작약 or 시호+복령 or 시호+모려
상열감이 심하다면 시호+계지
...
두통, 어지럼증, 식욕부진, 메슥거림... 이런 건 기본적으로 소시호탕이 다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이라서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심한 소화불량도 인삼제(人蔘劑)나 금련제(芩連劑)가 아닌 시호제로 치료되는 영역이 있다. 매번 체하면 머리는 깨질듯이 아프고 토하고 응급실에 드나드는 정도의 극심한 소화불량도 소시호탕 원방으로 치료한 예가 있다. 소시호탕증이니까 소시호탕으로 치료한 것이고, 일회성이 아니라 이런 치료 패턴이 반복적으로 재현이 된다.
물론 증상만 조합하고 인형(人型; 사람의 유형)을 무시하면 안된다. 그러면 치료율이 꽝된다.
시호제의 바탕을 가진 사람에서만 효과가 나타난다. 그걸 알아보는 것은 의사의 경험이다.
구고(口苦) 인건(咽乾) 흉협고만(胸脇苦滿) 왕래한열(往來寒熱) 이런 건 항상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서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
요즘 치료하고 있는 10년 이상의 고질적인 가슴답답함을 호소하는 환자는
"전흉부 전체를 누가 콱 누르는 것처럼... 압박하는 것처럼 답답하다."
하지만 잠은 언제나 잘 자고 명백한 소시호탕 바탕을 보이고 있다.
전과루(全瓜蔞)를 사용해서 풀어내고 있는데,
충분한 양을 사용해야 말 그대로 가슴이 "뚫리는" 환자들이 있다.
ps) 황련 vs. 시호
양적 성향인데 수면상태가 불량한 경우 일단 황련제를 고려할 수 있는데요,
황련제가 아닌 시호제로만 해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함흉탕으로는 눈꼽만큼의 호전도 없는데, 시호거금가령탕을 복용해야 비로소 호전이 되는 불면증이나 수면장애가 있는 것이죠. 일단 고방에서는 시호와 황련은 만나지 않기 때문에 원방을 사용하는 경우 시호와 황련이 붙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황련제와 시호제를 어떻게 감별하는가의 문제가 생기는데요...
이 부분은 다분히 감각적인 면이 있습니다.
도식적으로는 심열(心熱)로 변증이 되는 상열감 및 심계(心悸)를 보이는 경우 황련의 적합도가 더 높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것도 확실히 일리는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황련제에서 잘 보이는 분노나 흥분의 감정이나, 시호제에서 잘 보이는 짜증의 감정도 참고가 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설진(舌診)이 도움이 될 때도 있습니다. 뭐든 굉장히 저명하고 전형적일 때는 도움이 되는 것이죠. 따라서 그런 명시지를 잘 공부해 두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임상은 그런 수많은 '크고' '작은' '전형적인' 혹은 '비전형적인' 단서들을 종합적으로 잘 캐치하는 사람들의 영역이니까요.
수면장애의 경우 일반적으로 황련제가 시호+작약(ex. 시호계지탕, 사역산)이나 시호+복령(ex. 시호거금가령탕, 사역가복령산)보다는 정도가 심합니다. 하지만 시호+모려(ex. 시호계지건강탕)의 경우에는 불안감을 동반한 불면이 매우 극심한 경우가 있으니까 주의해야 하구요. 기타 시호거금가령탕의 경우는 수면유지장애(ex. 시호계지탕)보다는 입면장애 형태로 나타나는 자잘한 각론도 있기는 합니다. 이런 부분은 저도 계속 경험하고 연구 중이구요.
다시 감별의 문제로 돌아와서... 위에서 감각적인 부분이 있다고 했는데요,
그 부분은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소시호탕류나 사역산류 증례를 일단 반복적으로 내다보면(결국 이 부분은 본인이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네요) 시호제를 잡아내는 암묵지가 더 올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게 도식적으로는 양적 성향이고 수면에 이상이 있으니까 황련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떠오를 때도 환자의 기타 증상들(예를 들어 소시호탕증에서 보이는 빈증과 혹증)과 이전에 시호제에서 득효했던 경험이 영향을 미쳐서 시호제로 선방을 할 수 있는 안목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런 부분도 앞으도 더 귀납해서 암묵지가 아닌 명시지의 형태로 만들어 내면 더 좋겠지요. 그건 꾸준히 노력해야 할 과제입니다.
물론 지금도 저도 헤맬 때가 종종 있습니다. 불면증으로 잠을 못 자서 황련제... 예를 들어 소함흉탕 줬다가 실패하고 시호거금가령탕으로 성공한다든지 혹은 그 반대의 경우라든지... 임상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도전이고 어렵습니다. 다만 시행착오 후에라도 결국 찾아갈 수 있으려면 안목을 넓혀두는 것이 필요한 것이구요.
수파리(守破離)... 일단 명시지의 틀을 익히고... 틀을 깨고... 틀을 떠나고... 다시 틀을 익히고... 임상은 그 과정의 영원한 반복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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