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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이야기

황련해독탕과 현대한의학

by 키다리원장님 2022. 9. 21.

한의사 최가원님의 페이스북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출처 : https://www.facebook.com/doctorchoe/posts/1019500618108512

 

개인적으로 굉장히 사랑하는 처방 중 하나인 ‘黃連解毒湯황련해독탕’으로 현대한의학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 처방의 구체적인 최초의 기재는 4세기 의학서적 중 하나인 [肘後備急方]에 등장한다(이번에 노벨상을 수상한 투유유 교수가 바로 이 책에서 청호추출방법에 대한 노하우를 얻었다). 하지만 탕명은 기재되어 있지 않고 약물의 구성과 적응증상에 대해서만 나온다. 적응증은 매우 초보적인데 ‘열감으로 답답함, 구토, 불면’ 정도만 기재되어 있고 전탕법과 복용법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황련해독탕이라는 처방명은 8세기에 쓰여 진 의학서 [外臺秘要]에서 崔氏처방을 인용하면서 최초로 등장한다. 주후비급방 이후 4세기 간 누적된 의학경험이 고스란히 반영되면서 외대비요에서는 황련해독탕의 적응증도 늘어난다. 며칠간 복용을 해야 효과를 볼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복용기간도 등장하는 것을 보면 400년간 이 처방의 경험이 상당히 누적되었음을 알 수 있다(참고로 제시된 복용기간은 5일이다).

 

실제로 황련해독탕 적응증이 있을 때 이 처방을 투약하면 거의 즉시적인 효과를 경험한다. 잇몸의 염증으로 퉁퉁 부었을 때 잠깐 입에 물고 있으라고 해보면 5분 내에 부종이 가라앉는 현상을 눈으로 직접 관찰 할 수 있고, 급성인후두염에도 역시 입에 물고 천천히 삼키라고 하면 금방 인후부의 통증이 사라지는 일도 허다하다.

 

우리 한의원에서는 인후통이 있을 때 루틴하게 황련해독 증류액을 입안에 분사해주는데 효과가 좋다. 그리고 많은 한의원에서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에서 나온 연구 중 급성 위장 출혈에 내시경으로 출혈부위를 확인하고 병소에 황련해독탕을 도포하면 즉시 지혈된다는 사례도 황련해독탕의 즉효성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된다.

 

[史記 扁鵲倉公列傳]에 기재된 ‘液湯火劑’를 황련해독탕이라 보는 의견에 따라 황련해독탕을 ‘火劑湯’이라고도 하나 아직 황련해독탕이 어떤 처방에서 기원한 처방인지는 아무도 알 지 못하고 있다. 다만 [金匱要略]의 瀉心湯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거라 추정은 하고 있다. 어쨌거나 이 처방은 이후로도 역사 속에서 그 효과를 인정받으며 지속적으로 사용된다.

 

청나라 의서 중 하나인 [醫宗金鑑]에는 ‘황연해독탕가미’ 라는 처방이 등장하는데 기본처방에 牧丹皮, 金銀花, 蓮翹, 生地黃, 甘草 등이 추가되어 있다. 이 처방은 두드러기를 치료하는데 사용되었다.

 

또 다른 의서에는 황련해독탕을 기반으로 해서 赤芍藥, 薄荷, 陳皮, 天花粉, 射干, 甘草, 川芎, 靑皮, 金銀花, 當歸, 玄蔘, 燈心, 竹葉을 추가한 三黃凉膈散이란 처방도 등장하는데 이 처방의 적응증은 惡寒發熱을 동반한 咽喉紅腫疼痛이다.

 

이것은 단적인 응용 사례에 불과하며 역사 속에서 황련해독탕의 다양한 가감례가 등장한다. 때로는 麻黃, 蔥白, 豆豉가, 
때로는 石膏, 知母, 玄蔘, 生地黃 등이 
때로는 大黃이, 
때로는 黃芪 當歸가, 
때로는 四物湯을 合方하기도 하고 
때로는 槐花, 側柏葉, 地楡등이, 
때로는 茵蔯 茯苓, 澤瀉 등이, 
때로는 瞿麥, 茯苓, 車前子를 가미하는 방식으로 
黃連解毒湯을 處方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을 가지고 있는 환자의 다양한 증상에 대처하는 방법들이 역사를 통해 발전되어 내려왔다. 한의사들은 가미된 약재만 보고서도 어떤 증상에 대처하려고 저렇게 가미를 하였는지 알 수 있다.

 

황련해독탕은 1600년 이상의 투약역사를 가지고 있고 21세기를 사는 요즘에도 임상에서 매우 자주 처방되는 약 중 하나다.

 

20세기 이후에는 과학적 연구도 어마어마하게 진행이 되었다.

 

황련해독탕을 구성하고 있는 개별 약재별 화학성분연구, 약재를 한꺼번에 달였을 때와 개별적으로 달였을 때의 성분변화 비교, 독성연구, 황련해독탕 기반 OTC제제연구, 기타실험연구, 임상연구 등 굉장히 다양하다.

 

지금까지 밝혀진 황련해독탕의 약리작용만 해도 ‘항균작용, 항내독소작용, 해열작용, 항염작용, 진통작용, 항궤양작용, 간보호작용, 지혈작용, 항혈전작용, 혈당강하작용, 혈압강하작용, 심근비대억제작용, 항고지혈증작용, 항죽상동맥경화작용, 뇌보호작용, 항종양작용’ 등이 있다.

 

임상적 응용범위는 실로 대단히 넓은데 
‘폐렴, 급성 상부소화기 출혈, 위염, 십이지장궤양, 궤양성결장염, 이질, 바이러스성간염, 급성담도염, 치질, 당뇨병, 뇌경색, 급성고혈압성뇌출혈, 치매, 불면, 정신분열증, 바이러스성심근염, 고혈압, 백혈병, 혈소판감소성자반증, 통풍성관절염, 급성신우신염, 여드름, 담마진, 과민성피부염, 대상포진, 매독, 혈액투석후 피부가려움, 구강궤양, 편도선염, 결막염, 급성누낭염, 급성골반염, 대하, 자궁출혈, 자궁경부미란, 급성고환염, 만성전립선염, 급성요부염좌, 흉부연조직좌상 등’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 황련해독탕은 위에 나열된 질환명이나 단순한 증상만 가지고 처방해서는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기존 한의학 서적에 정리된 ‘한의학적 적응증’이라는 것이 확인된 상태에서 투약을 해야한다. 폐렴이라고 무작정 황련해독탕을 쓴다던지, 자궁출혈이 있다고 그냥 황련해독탕을 투약한다던지 해서는 전혀 효과를 볼 수가 없다. 즉 황련해독탕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의학적 적응증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1980년대 일본의사들 사이에 유행했던 소시호탕의 례가 좋은 사례가 된다. 소시호탕의 전통적인 적응증이 분명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한의학적 적응증과는 상관없이 간질환에 무조건 소시호탕을 투약하다가 여러 사람이 죽는 바람에 쯔무라 제약사 자체가 사라질 뻔한 사건을 기억해야 한다.

 

현대 중국에서도 서의사들이 중성약(한약)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처방해서 발생하는 부작용이 많이 보고되고 있다.

 

한약은 역사 속에 정리된 나름의 처방 가이드라인 증상이 있으며 그 증상에 맞아떨어질 때 투약을 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특정 질병명에 따라 처방이 결정되는 게 아니다. 

 

양약중에 황련해독탕처럼 1600년 이상 역사적 검증을 통과하고 살아남은 처방이 단 한개라도 있는가? 생각해볼 일이다. 세상에 단 한번도 존재해본적도 없는 합성신약이 새로 개발되면 혹독한 검증과정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리 혹독한 과정을 단기간에 통과한다 하더라도 천년이상의 역사적 검증과는 비교 불가한 일이다.

 

아무튼, 양방진단명이 무언인가와는 상관없이 해당한약처방의 적응증만 있다면 진단명이 무엇으로 나오건간에 한약을 처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황련해독탕의 현대적 응용 질환의 범주가 다양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것은 모든 한약처방에 다 적용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러한 한약의 특성에 대한 연구가 요즘 상당히 많이 진행되고 있다.

 

체학적 기법들을 한약연구에 접목하면서 베일에 가려져있던 한약의 효과기전에 대한 그림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학문이란 결코 정지된 채 머무르지 않는다. 아니 학문이란 원래 가만히 있을 수 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인접학문과의 교류, 당대 최고의 기술과의 접목. 이것은 학문발전의 필수요소이다.

 

현대한의학은 전통한의학이라 볼 수 있는 1900년 이전의 의학과는 이미 상당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1950년대 이후로 진행된 한의학의 객관화, 과학화 작업 및 인접학문과의 교류로 인한 결과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하려하지도 않고 특정 이익집단의 이기심의 발로로 한의학이라는 이름 위에 왜곡된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정치세력들이 있다는 현실이다.

 

현대한의학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 채 한의학을 어떻게 하면 말살시킬 수 있을지 만 고민하는 특정 세력들. 나는 이들을 사회악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