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증례를 정리하면서 내가 다시 많이 배운다.
시간이 흐르면 ‘그 환자 그 처방으로 많이 좋아졌었지’ 이 정도 기억만 남고 세부적인 디테일은 서서히 잊혀진다.
다시 챠트를 정리하다보면, 당시에 내가 인지하지 못했던 증상이나 정황들이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다가온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도 비슷하지 않던가.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난 후에야 그 만남의 의미가 더 잘 보이듯이.
주지하듯 환자의 호소는 있는 그대로 적는 것이 좋다.
“머리가 아프고, 뇌를 꺼내서 물로 씻고 싶어요.”
“머리 위에 항상 철판을 대 놓은 것 같아서, 그걸 뜯어내고 싶다.”
“가슴에서 뭔가 기름이 좁은 공간을 어렵게 흘러 다니는 느낌이예요.”
바쁘다고 이런 내용들을 두통, 頭冒, 불쾌감 등으로 기록하면 안 된다.
예전에 소뒷걸음 치다가 치료한 환자들의 챠트를 다시 살펴보면,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환자의 감정이나 호소가 지금은 눈에 들어온다.
당시에 그런 내용을 적었던 기억이 전혀 없는데, 챠트에는 떡 하니 적혀있다.
환자가 명백하게 증상을 호소하고 의사에게 계속 힌트를 줘도 그것을 포착할 수 있는 인식의 틀이 없으면 의미 있는 정보로 들어오지 않는다.
“저게 도대체 뭔 소리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인식의 틀이 넓어지면, 당시 환자가 집요하게 힌트를 줬던 것을 이제야 알게 된다.
과거의 챠트를 읽는 것도 책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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