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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이야기

귤피(橘皮) vs. 치자(梔子)

by 키다리원장님 2012. 12. 24.

귤피(橘皮) vs. 치자(梔子)

 

최근에 가슴에서 체한다는 환자를 만나고 귤피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체하면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못 쉬고, 아파서 웁니다. 치험례는 다음에 올리기로 하구요.

고방(類聚方)에 귤피가 들어간 처방은 총 5개가 있습니다.

 

① 당연히 가장 처방 구성이 간단한 귤피탕[橘皮4냥 生薑반근]부터 살펴봐야겠죠.

乾嘔, 噦, 若手足厥者, 橘皮湯主之.

橘皮四兩, 生薑半斤. 右二味, 以水七升, 煮取三升, 溫服一升, 下咽卽愈.

헛구역질이나 딸꾹질을 하는데 만약 손발이 싸늘하면 귤피탕으로 다스린다.

 

방후의 복약법에 보면 계지탕처럼 죽을 먹고 이불을 덮고 그런 말은 없고, ‘따뜻하게 마시면 즉시 낫는다’고 기록하여 효과가 매우 빠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② 귤피탕에 죽여․인삼․대조․감초가 추가된 귤피죽여탕[橘皮2승 竹茹2승 生薑반근 大棗30매 甘草5냥 人參1냥]으로 갑니다.

噦逆者, 橘皮竹茹湯主之.

딸꾹질을 하면 귤피죽여탕으로 다스린다.

 

일단 귤피탕과 귤피죽여탕은 딸꾹질(噦)을 치료하는 처방으로 나와 있군요.

귤피탕과 귤피죽여탕에 대한 사론(師論)을 살펴봅니다.

 

귤피탕은 귤피죽여탕보다 증상이 더 심한 경우이다. 귤피탕은 위독한 경우에도 사용한다. 輕證에는 귤피죽여탕으로도 충분하다. 귤피탕은 藥味가 적으며 重證인데 좋다. 곽란(급성토사병) 등의 뒤 끝에 구토(嘔)와 딸꾹질(噦)이 같이 나와서 약도 통하지 않고 의사도 포기할 때 이것으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有持桂里, 方輿輗)

 

③ 귤피탕에 지실이 추가된 귤피지실생강탕[橘皮1근 生薑반근 枳實3냥]은 가슴이 막힌 듯 답답한 흉부 증상을 치료합니다.

胸痺, 胸中氣塞, 短氣, 茯笭杏仁甘草湯主之; 橘枳薑湯亦主之.

흉비로 가슴 속이 막힌 듯하고 숨이 짧으면 복령행인감초탕으로 다스린다. 귤피지실생강탕도 쓸 수 있다.

 

④ 이제 귤피지실생강탕에 인삼․복령․백출이 들어간 복령음[茯苓3냥 人蔘3냥 白朮3냥 枳實2냥 橘皮2냥반 生薑4냥]입니다.

治心胸中有停痰宿水, 自吐出水後, 心胸間虛, 氣滿, 不能食, 消痰氣, 令能食.

심흉 중에 담이 머물러 있고 물이 괴어 있다가 이것을 스스로 토한 후에 심흉이 허해지고 위장이 그득하여(氣滿)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을 치료한다. 담기(痰氣)를 없애고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한다.

 

복령음은 흉부증상과 상부 소화기 증상을 동시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복령음은 식욕이 없다기보다는 胃部에 가스가 충만하여 먹을 수 없는 경우에 쓴다. 심할 때는 가슴이 꽉 차서 누울 수 없는 일조차 있다. 물이 입으로 상역하여 토한다. (대총경절, 한방치료의 실제)

 

⑤ 마지막으로 귤피대황박초탕[大黄 朴消2냥 橘皮1냥]입니다.

鱠食之, 在心胸間不化, 吐復不出, 遠下除之, 久成癥病.

물고기(회)를 먹었는데 심흉(心胸) 사이에서 막혀 소화가 되지 않고, 토해보지만 나오지 않는다. 멀리 아래로 내려보내서 제거한다. 오래되면 징병(癥病)이 생긴다.

 

물고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체한다(在心胸間不化)는 것이 중요합니다. 역시 흉부 증상이 있습니다.

 

귤피는 임상적으로 딸꾹질(噦逆) 및 상부 소화기 장애(滯氣)와 동반된 흉부 증상에 사용합니다. 체하면 명치가 아픈 것이 아니라 꼭 가슴과 식도 부위가 막힌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때 귤피를 떠올리면 됩니다.

 

약징(藥徵)을 살펴보겠습니다.

 

主治 呃逆也. 旁治 胸痺 停痰.

딸꾹질을 주치한다. 가슴이 답답한 것(胸痺)과 정체된 담(停痰)을 부수적으로 치료한다.

 

사실 약징(藥徵)은 위의 조문들에 대한 써머리에 불과합니다. 呃逆은 귤피죽여탕에서, 胸痺는 귤피지실생강탕에서, 停痰은 복령음의 조문에서 채택한 것입니다. 대단한 함의(含意)가 있는 단어가 아니라 조문에서 채용한 용어입니다. 이기화담(理氣化痰), 조습성비(燥濕醒脾). 이런 표현이 없어서 섭섭한가요? 하지만 용마루를 채울 정도로(充棟) 많은 역대의 수많은 본초서 중에서 약징이 가장 탁월한 본초서 중 하나로 꼽히는 이유는, 이처럼 사변(思辨)에 치우치기보다는 조문에 대한 철저한 고증(考證)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징(藥徵)입니다. 물론 약징(藥徵)도 완벽한 책은 아닙니다.

 

서론(序論)이 너무 길었네요. 귤껍질이 대체 뭐길래...?

 

어떤 약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일단 그 약을 달여서 먹어 봐야 합니다. 그게 시작입니다. 달여서 먹는다고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것이 시작입니다. 아닌가요?

제가 전에 기록한 파일을 다시 열어봅니다.

 

귤피의 전탕액은 향기가 진하고 쌉싸름하다. 단맛이 그리 강하지는 않다. 생강처럼 인후부를 자극하는 톡 쏘는 맛이 있다. 마시고 잠시 시간이 지나면 흉곽 부위가 뜨거워지는 느낌이 난다.

 

여기 중요한 힌트가 있군요. 계지를 달여서 마시면 얼굴, 가슴, 어깨 부위가 후끈하면서 살짝 땀이 난다고 했었죠? 그리고 계지의 효능 대부분은 말초모세혈관의 확장으로 갈무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귤피는 흉곽으로 혈액을 유입시키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군요. 가슴이 뜨거워지잖아요!

 

좋습니다. 딸꾹질은 왜 생기는 것일까요? 딸꾹질은 횡격막에 쥐가 나는 것이지요. 무리한 운동 혹은 혈액순환의 저하로 다리에 쥐가 날 때 작약(芍藥)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흉강으로 유입되는 혈액량이 적어서 횡격막 근육에 쥐가 날 때 귤피를 사용하여 그 쪽으로 혈액을 몰아주면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횡격막 근육의 쥐가 풀린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저처럼 딸꾹질이 잦은 사람들은 뭔가 기질적으로 흉강으로의 혈액 유입이 자주 저하되는 약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귤피차를 자주 마셔야겠네요.

 

귤피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 보니, 비슷한 부위에서 비슷한 증상을 치료하는 약재가 하나 더 떠오르시나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렇습니다. 치자(+향시)입니다.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하고, 속쓰림과 연하곤란 등을 치료합니다. 똑같이 흉강 및 식도 부위의 기능 이상을 치료합니다.

 

상한론에서는 치자시탕을 ‘心中懊憹’ ‘胸中窒’ ‘心中結痛’에 사용하고 있다. ‘心中懊憹’라 함은 가슴 속이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으리만큼 언짢아서 기분이 나쁘고 개운하지 못한 상태이며, ‘胸中窒’은 가슴이 꽉 막히는 것이고, ‘心中結痛’이라고 하는 것은 조이는 듯이 아프다는 것으로 치자는 꼬집는 듯이 아픈 데도 사용한다. 이런 것 등으로 보아서 치자가 얼마나 흉부에 작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된다. (대총경절, 한방치료의 실제)

 

「長沙腹診考」에 다음과 같은 치험이 나와 있다. 내가 향리에 있었을 때 어떤 부인이 있어 나이는 21세쯤이었는데, 갑자기 가슴이 아파서 말을 할 수도 없었으며, 통증은 참을 수 없는 정도였다. 몇 가지 처방을 써 봤으나 어느 것 하나도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치자시탕을 사용했더니 단 한첩으로 통증이 멎었다. 필자는 식도의 경련성 통증에 치자감초시탕을 써서 著效를 얻은 일이 있었다. 치자감초시탕은 위궤양에도 사용할 기회가 있다. (대총경절, 대총경절저작집)

 

치자는 달여서 먹어봤나? 아. 마침 있군요.

 

씹어보면 쓴맛이 강하면서도 특유의 노린내 비슷한 냄새가 나고 약간 끈끈한 느낌이 난다. 물에 쉽게 우러나와 주황색과 적색을 혼합한 색을 낸다. 탕전 시에도 약간 노릿한 냄새가 난다. 하지만 전탕액은 오히려 많이 쓰지 않고 마실 만하다.

 

그렇다면 귤피와 치자는 어떻게 구분할까요? 제가 지난 번에 과루근에 대하여 그런 말을 했었죠. “과루근에 대하여 ‘혈맥의 진액이 부족(不足)하기 때문에 생기는 갈증을 치료한다.’ 정도로 이해하는 것은 순환론적인 관점이 결여된 것이다.” 과부족(過不足), 한열허실(寒熱虛實)로만 본초를 이해하는 것은 부분적인 이해일 뿐입니다. 증상의 조합이 아니라 몸 전체가 돌아가는 모습이 그려져야 그 약물이나 처방을 정확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치료율이 올라가는 것이죠.

 

우리 인체 어느 부분의 기능 장애는 단순하게 생각해서 ①그 부분에 혈액이 없거나 ②그 부분에 혈액이 너무 많아서 발생합니다. ①번의 허혈(虛血) 상태가 국소적인 허증(虛證)에 해당하고, ②번의 충혈(充血) 상태가 국소적인 실증(實證)에 해당합니다.

 

귤피가 치료하는 증상들이 흉강의 허혈(虛血) 상태로 인하여 유발된다면, 그렇다면? 치자는 반대로 흉강의 충혈(充血) 상태로 유발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해볼 수 있겠죠? 혈액이 너무 많이 몰려서 가슴이 터질 듯이 답답하고, 식도 부위의 충혈로 속쓰림이나 매핵기, 연하곤란을 유발할 수 있겠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순환론적인 관점에서 인체를 파악하려고 했던 길익남애(吉益南涯)의 책을 살펴봅니다. 기혈수약징(氣血水藥徵)을 찾아보니 놀랍게도 귤피와 치자가 짝이 되어 설명이 되어 있네요.

 

橘皮귤피 (氣, 內) 氣逆 而水滯者.

梔子치자 (氣, 內) 氣急 而水滯者.

 

(氣, 內)는 흉강부위를 말합니다. 귤피는 기역(氣逆)이라고 설명되어 있고, 치자는 기급(氣急)이라고 설명되어 있네요. 길익남애의 용어에서 기역은 기혈이 잘 공급되지 않는 허혈(虛血) 상태를 의미하고, 기급은 기혈이 과도하게 몰리는 충혈(充血) 상태를 의미합니다. 일단 그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아. 다시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용어는 다르지만 길익남애 선생과 제가 같은 식으로 생각을 한 것입니다. 점점 퍼즐이 풀려가는 느낌이 듭니다.

기역(氣逆), 즉 허혈로 생긴 귤피증에는 따라서 궐(厥), 역(逆) 등의 한증(寒證)이 보이고, 기급(氣急), 즉 충혈로 생긴 치자증에는 따라서 번열(煩熱), 신열(身熱), 두한(頭汗) 등의 열증이 보인다는 설명이 부연되어 있네요.

 

마지막 고리만 찾으면 이제 치자와 귤피를 더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귤피의 허혈(虛血)은 왜 생길까요? ①input이 막혔거나 ②output이 너무 많거나. 간단하죠?

과루근의 갈증은 ②번 때문이었고, 갈근의 항배강(項背强)은 ①번 때문이었죠.

 

치자의 충혈(充血)은 왜 생길까요? ①input이 너무 많거나 ②output이 막혔거나.

 

마지막 고리를 찾기 위해서 약리학책을 꺼내고 본초서와 치험례를 다시 읽습니다. 옛날 사람들이 사용한 용어는 다르지만, 인체를 기술한 현상은 동일합니다. 그 용어들과 치험례가 통합적으로, 한 줄기로 이해되는 순간 또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갑니다.

 

몰입을 하면 반드시 답이 나옵니다. 그 답은 하루 만에 나올 수도 있고, 일주일 만에 나올 수도 있고, 일년 후에 나올 수도 있습니다. 답은 반드시 나오지만 힘든 것은 몰입하는 것이죠.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가’에 달려있는 것뿐입니다.